작품 설명
포레스트 커리큘럼은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잇는 삼림지대 조미아의 자연문화를 통한 인류세 비평을 주로 연구합니다. 작품 유랑하는 베스티아리는 이 연구의 일환으로, 비인간적 존재들이 근대 국민국가에 내재된 계급적이고 세습적인 폭력과 그에 따른 잔재들에 어떻게 대항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좌중을 압도하는 듯한 거대한 깃발들은 위태롭고도 불안하게 스스로를 지탱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깃발에는 벤조인이나 아편부터 동아시아 신화에 등장하는 동물들까지 비인간 존재들을 상징하는 대상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각 깃발들은 비인간적 존재들의 대표자로서 모두가 한데 결합되어 아상블라주 그 자체를 표상합니다. 또한 깃발들과 함께 설치된 사운드 작품은 방콕과 파주에서 채집된 고음역대의 풀벌레 소리, 인도네시아의 경주용 비둘기들의 소리, 지방정부 선거를 앞두고 재정 부패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불필요한 공사에서 발생하는 소음, 그리고 위의 소리들을 찾아가는데 사용된 질문들과 조건들을 읽어 내려가는 내레이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계 경제는 해운업에 의존하여 돌아간다. 소비재, 밀, 쌀, 석유, 목재, 석탄 등 여러 나라가 매일 생산하고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건은 매년 점점 더 거대해지는 화물선을 타고 전 세계로 이동한다. 대부분의 화물선은 석유 정제 과정에서 남은 잔여물(따라서 더 저렴한)로 만든 더러운 연료인 중유(HFO)로 움직인다. 모든 중유는 전 세계 바다와 수로에 흔적을 남긴다.
해양 분야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친환경' 선박을 만드는 것으로 대응한다. 향후 수년 간 부산 조선소들은 메탄올, 수소, 메탄과 같은 대체 연료로 움직이는 새로운 ‘자연친화적’ 선박 만들기에 분주할 것이다.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다수의 이런 배들은 해운 운송 산업의 자연 친화적 전환을 계획하고 ‘녹색’ 연료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 곳곳 항구 간에 체결된 상호 계약인 소위 ‘녹색운항항로’를 오가게 될 것이다.
리퀴드 타임의 리서치 영상은 화물선 한 척이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싱가포르까지 세계 최대 녹색운항항로 중 하나를 따라 이동하는 과정을 멀리서 따라간다. 일련의 대화와 조사를 통해 작품은 해운산업의 자연 친화적 미래를 그려보고 가능성은 있으나 여전히 요원해 보이는 자연 친화적 전환의 법적, 경제적, 그리고 인프라적 조건을 들여본다.
녹색 통로를 구성하는 여러 겹의 규제와 경제 계획들을 하나씩 벗겨내면서, <리퀴드 타임>은 해운업계의 기후위기 대응이 현재의 시장을 파괴적인 경향에서 벗어나도록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계속 창출해서 전과 동일한 비즈니스 과정이 진행되도록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