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설명
포레스트 커리큘럼은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잇는 삼림지대 조미아의 자연문화를 통한 인류세 비평을 주로 연구합니다. 작품 유랑하는 베스티아리는 이 연구의 일환으로, 비인간적 존재들이 근대 국민국가에 내재된 계급적이고 세습적인 폭력과 그에 따른 잔재들에 어떻게 대항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좌중을 압도하는 듯한 거대한 깃발들은 위태롭고도 불안하게 스스로를 지탱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깃발에는 벤조인이나 아편부터 동아시아 신화에 등장하는 동물들까지 비인간 존재들을 상징하는 대상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각 깃발들은 비인간적 존재들의 대표자로서 모두가 한데 결합되어 아상블라주 그 자체를 표상합니다. 또한 깃발들과 함께 설치된 사운드 작품은 방콕과 파주에서 채집된 고음역대의 풀벌레 소리, 인도네시아의 경주용 비둘기들의 소리, 지방정부 선거를 앞두고 재정 부패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불필요한 공사에서 발생하는 소음, 그리고 위의 소리들을 찾아가는데 사용된 질문들과 조건들을 읽어 내려가는 내레이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다에도 땅에도 경계선은 없다. 울타리는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며 경계선 또한 인간이 그려낸 것이다. 울타리에 둘러싸인 공간은 들어갈 수 없다는 명백한 신호를 보내지만, 우리의 시선은 울타리나 경계선으로 둘러싸인 공간도 꿰뚫고 들어간다. 경계선은 외부에서 관통될 수 있다.
야스아키 오니시의 설치 작품에서 울타리는 이쪽 편과 반대편을 가르는 그 경계의 표식이 된다.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울타리는 경계선을 겹겹이 쌓아 투과할 수 있는 양감을 만들어 낸다. 작가는 울타리처럼 흔히 볼 수 있는 기성품을 사용해 빈 공간을 조각하고 우리의 상상으로 그 공간은 채워진다. 우리와 바다 혹은 자연 사이에 자리한 공간은 분리선이나 경계선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의 빈 공간은 수직선과 수평선, 채워짐과 비워짐의 구조로 형상화되어 우리가 다채롭게 해석하고 새로운 지평을 그려보며 그 형상을 채우게 한다. 출품작 〈경계의 레이어〉는 충만과 공허, 존재와 부재의 개념을 고찰한다. 또한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와 경계를 들여다본다. 작가는 익숙한 울타리를 뒤집어 더 이상 고정된 구조물이 아닌, 꿰뚫어지고 다양하게 해석되게끔 한다. 그렇게 우리와 바다를 가르는 경계라고 여겨지는 선을 우리의 상상으로 지워보자 제안한다.
작가는 인간과 바다, 인간과 자연을 가르는 분할선뿐 아니라 육상과 바다에서의 인간 활동과의 구분점 또한 재고하게 한다. 그의 작업은 바다가 현재 겪고 있는 급변을 시사하기 위해 바다, 육지, 자연과 인간이 연결된 개체로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